생각

바벨의 도서관, 테오도르 델 모노 그리고 에버노트

말에서 내려라 2013. 11. 28. 20:20



1. 


위의 사진에서 눈에 띄는 것은 무엇인가?


1. 에버노트의 인터페이스
2. 햄버거
3. 2014 라이즈업 제주 대회 하네?!
4. iOS로군…
5. ???

그럼 이 사진을 올린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지금까지 에버노트를 쓰면서 만든 노트의 갯수가 1,000개[각주:1]가 되었다는 것이다.



에버노트에 가입한것이 2010년 10월이니까 햇수로 4년, 개월 수로 25개월이 지났고, 

작년 12월 나는 프리미엄 회원이 되었다.

25개월 동안 1000개의 노트를 남겼으니 평균적으로 매일 1.3개의 노트를 생성한 샘이다.

에버노트를 처음 사용할때 눈에 띄었던 홍보문구가 기억이 난다.

‘당신의 두번째 뇌'

그리고 지금의 홍보문구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을까?

완전기억능력(Eidetic Memory, photographic memory)[각주:2]을 가졌다고 알려진 사람을 제외하고

일단 우리의 뇌는 평균 기억률[각주:3]을 가지고 있다.

평균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두뇌에 정보를 저장하고, 저장한 정보를 인출(retrieval)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저장 용량의 문제도 있겠지만 이건 관점이 다양하므로 미루어두도록 하자.

인간의 뇌에는 누구에게나 '망상체 활성 구조(Reticular Activating System)[각주:4]’와 망각 DNA가 존재한다.

망상체 활성 구조란 뇌의 맨 밑바닥에 있는 조직으로 

뇌에 입력되는 정보를 분류하고 걸러주는 필터 같은 역할을 한다.

즉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걸러서 뇌와 신경의 낭비를 막기위한 시스템인 것이다.

또한 망각 DNA란 필요한 정보를 목적에 의해 지우는 작업을 담당하는 시스템으로 추측된다.

우리 몸에는 인간의 뇌를 보호하고 용량을 유지하는 장치들이 마련되어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보호장치를 극복하고 우리는 어떻게 우리 뇌에 정보를 축척하고 기억을 유지할 수 있을까이다.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켜왔고 그 혜택으로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2.

그 방법의 첫째가 언어와 문자일 것이다.

혼자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전달 될 수 있도록 인류는 언어를 발전시켰고, 

그 언어의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문자를 개발했다. 

문자가 개발된 이후 인간은 태블릿, 양피지, 파피루스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 문자를 남겨 정보를 축적하기 위해 
노력했다.

<'장미의 이름'의 장서관 투시도>


그리고 마침내 ‘책’이라는 형태를 발명하게 된다. 


책의 탁월한 점은 이용의 편의성도 있지만 
보관의 용의성이 더 클것이다.

바로 ‘도서관’의 등장인 것이다.

보르헤스는 그의 책 ‘바벨의 도서관’에서 

4개의 벽면에 책으로 가득 채워진 책장이있는 

무한한 정육면체 모양의 방들로 이루어진 도서관을 
환상적으로 묘사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그의 명작 ‘장미의 이름’을 기획하며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되는 중세에는 아직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이므로 책 한권을 얻기 위해서는

필사자의 손으로 한땀한땀 한글자씩 원본의 내용을 배껴 써야만 했다.

한권의 책이 담은 지식을 남기기 위해서는 저자가 감당했던 노동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져야만 했다.

이는 바로 지식의 무게 혹은 가치의 문제로 변환될 수 있다.

‘장미의 이름’의 마지막 장면,

도서관(장서관)이 불타는 모습을 바라보는 

윌리엄 수도사의 절규는 그 무게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인쇄술은 물론 모든 지식을 ctrl+C, ctrl+V로 복제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이다.

발터 벤야민은 그의 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사진을 통해 복재 가능해진 시대의 예술의 가치가 

변화될 것을 예견했고 그 예견은 지금도 유효하다. 

아니 더욱 강화되어 지식의 영역까지 확대되었다. 

우리는 이제 시험볼때를 제외하고 무엇인가 모르고있는 상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필요한 지식은 어디엔가 있기 마련이고 

적당한 질문을 잘 던지기만 하면 그 지식이 나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아래의 동영상을 보면서 나는 불연듯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혹은 에코의 이름모를 수도원의 ‘장서관'이 떠올랐다.

이 시대의 새로운 '바벨의 도서관'의 모습이다.





위의 동영상은 구글의 수많은 데이터 센터 중 하나의 모습이다.

현재는 미국 아이오와의 카운실 블러프(Council Bluff), 벨기에의 생 기슬랭(St. Ghislain)을 비롯해 

홍콩, 싱가폴, 핀란드(벨기에와 핀란드에 있는 데이터 센터는 바닷물을 이용한 친환경 냉각 시스템을 갖춤) 등 

세계 곳곳에 100만대를 훌쩍넘는 서버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구글은 그들이 만들어낸 인프라스트럭쳐로 매일 200억개의 웹페이지를 인덱싱하고 있으며

구글을 통해 처리되는 데이터의 양은 하루 2000TB[각주:5]에 이른다.

마치 모든 지식을 먹어치우는 '불가살이[각주:6]'의 모습이나 

공자의 고향에 그려져 있는 '탐[각주:7]'이라는 동물이 떠오른다.

<공자의 고향 시푸에 그려져 있는 탐의 모습>


인류의 모든 지식이 담겨 있다고 여겨지는 구글 데이터 센터를 바라보면

보르헤스의 환상적 농담이 실제로 가능한 시대에 살고있다는 사실에 흠짓해진다.




4.

그렇다면 모든 지식에 접근 가능한 시대를 항해하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대항해시대가 가능했던건 

선박건조술과 함께 항해를 위한 다양한 기술과 기기가 필요했다.

방향과 위치를 알 수 있는 지도와 나침반은 물론 

날씨 , 거리, 속도, 시간을 알기 위한 다양한 기기가 필요했다.

잠깐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그렇다. 바로 우리의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은 대항해시대에 살아남기위해 필요했던 최첨단의 수많은 장비를 하나로 아주 작게 융합시킨 장비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당신 손에 들려있는 스마트폰이 좀 달리 보이지 않는가?

심지어는 위의 장비를 획기적으로 대체한 최첨단 장비인 GPS까지 들어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는 이제 우리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혹은 새로운 재화를 획득하기 위해 배를 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를 항해해야 할까?

바로 모든 정보가 모이는 곳, 'The Net’이 아닐까?

영화속에 등장하는 해커나 크래커가 될 필요는 없어도,

길을 잃지않고 최소한의 필요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개인적 '생존 지침'은 필요할 듯 하다.




5.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그 '생존 지침'을 얻을 수 있을까?

마지막 박물학자라 불리는 테오도르 델 모노는 평생 사막을 여행하며 자신의 관심분야를 연구하고

그 자료와 함께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은 그의 고백에 따르면  1934년부터 시작된 그의 수집품과 그에 대한 메모가 포함된 목록은

19,113번까지 번호가 매겨져 있으며 20,000번이 될 때까지는 죽지 않겠다고 농담조로 이야기 한다.

실제로 그의 수많은 노트는 후대까지 사막의 식물과 동물, 지질학, 해양 식물학 등의 연구에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그의 노트들은 실재로 그가 평생을 걸고 구축한 위대한 박물관이었던 것이다.

<수첩을 들고 사막을 산책하다 중, 이자벨 자리, 들녘>

 
평생을 궁금한 것들과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모아 

정리했던 그는 삶의 태도에서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 있지 않을까?




6. 

에버노트 노트 1,000개 달성 기념으로 짧은 글을 하나 쓰려고 했던 것이

꽤 여러 분야를 건드린 이상한 모양으로 완성 되었다.

세상을 항해할 자신만의 기준과 도구가 준비된다면 

무한한 지식의 시대는 우리에게 한없이 매력적이며 신나는 탐험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1. 참고로 노트북(카테고리) 35, 태그 227개 [본문으로]
  2. 18c 리투아니아의 대랍비였던 빌나 가온이 완전기억능력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고 스위스의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 프랑스의 수학자 앙리 푸앙카레, 니콜라 테슬라가 대표적인 완전기억능력의 소유자로 알려져있다 [본문으로]
  3. 에빙하우스에 따르면 인간은 시간이 지날수록 정보를 저장하고 인출하는 평균률을 가지고 있다. [본문으로]
  4. 두뇌 맨 밑에 위치하는 여과체로 반복되는 자극에 모두 의식적으로 반응하지 않아도 되게끔 하는 장치 익숙한 정보를 걸러낸다. 예외는 귀중히 여기는 것, 독특한 것, 위협적인 것 [본문으로]
  5. 1 TB = 1012 Giga bytes = 1,000,000,000,000 bytes 즉 20000TB는 2,000,000,000,000,000bytes 이다. [본문으로]
  6. 不可殺伊, 한국의 고대 설화에 나오는 상상의 동물로 죽일 수 없는 것이라는 의미 모든 것을 먹어치우며 계속 성장하는 동물로 묘사됨 [본문으로]
  7. 貪,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 존재. 욕망을 상징하며 태양을 비롯 모든 세계를 삼키고 종국에 자신까지 삼켜 세상을 무(無)로 만드는 존재로 알려져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