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적 인간이라면 누구나 두뇌에 정보를 저장하고, 저장한 정보를 인출(retrieval)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물론 저장 용량의 문제도 있겠지만 이건 관점이 다양하므로 미루어두도록 하자.
인간의 뇌에는 누구에게나 '망상체 활성 구조(Reticular Activating System)[각주:4]’와 망각 DNA가 존재한다.
망상체 활성 구조란 뇌의 맨 밑바닥에 있는 조직으로
뇌에 입력되는 정보를 분류하고 걸러주는 필터 같은 역할을 한다.
즉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정보를 무의식적으로 걸러서 뇌와 신경의 낭비를 막기위한 시스템인 것이다.
또한 망각 DNA란 필요한 정보를 목적에 의해 지우는 작업을 담당하는 시스템으로 추측된다.
우리 몸에는 인간의 뇌를 보호하고 용량을 유지하는 장치들이 마련되어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보호장치를 극복하고 우리는 어떻게 우리 뇌에 정보를 축척하고 기억을 유지할 수 있을까이다.
인류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을 발전시켜왔고 그 혜택으로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2.
그 방법의 첫째가 언어와 문자일 것이다.
혼자 가지고 있는 정보가 전달 될 수 있도록 인류는 언어를 발전시켰고,
그 언어의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문자를 개발했다.
문자가 개발된 이후 인간은 태블릿, 양피지, 파피루스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 문자를 남겨 정보를 축적하기 위해
노력했다.
<'장미의 이름'의 장서관 투시도>
그리고 마침내 ‘책’이라는 형태를 발명하게 된다.
책의 탁월한 점은 이용의 편의성도 있지만
보관의 용의성이 더 클것이다.
바로 ‘도서관’의 등장인 것이다.
보르헤스는 그의 책 ‘바벨의 도서관’에서
4개의 벽면에 책으로 가득 채워진 책장이있는
무한한 정육면체 모양의 방들로 이루어진 도서관을
환상적으로 묘사한다.
움베르토 에코는 그의 명작 ‘장미의 이름’을 기획하며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을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묘사
이 방식을 통해 당신은 스물세 개 글자가 어떻게 여러 가지로 변용되는가에 대해 엿볼 수 있다.
- 음울의 해부, 제2부, 2편, 4항
우주(다른 사람들은 <도서관>이라 부르는> 부정수 혹은 무한수로 된 육각형 진열실들로 구성되어 있다. 아주 낮게 난간이 둘려져 있는 이 진열실들 사이에는 거대한 통풍 구멍들이 나 있다. 그 어떤 육각형 진열실에서도 끝없이 뻗어 있는 모든 위층들과 아래층들이 훤히 드러나보인다. 진열실들의 배치 구조는 일정하다. 각 진열실에는 두 면을 제외하고 각 면마다 다섯 개씩 모두 스무 개의 책장들이 들어서 있다. 책장의 높이는 각 층의 높이와 같고, 보통 체구를 가진 도서관 사서의 키를 간신히 웃돌 정도이다. 책장이 놓여 있지 않는 두 면들 중의 하나는 비좁은 현관으로 통해 있다. 그 현관은 모두가 똑같은 형태와 크기를 가진 다른 진열실로 연결되어 있다. 현관의 왼편과 오른편에는 각기 아주 작은 방이 하나씩 있다. 하나는 서서 잠을 자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용변을 보는 곳이다. 현관에는 나선형 계단이 나 있는데 계단은 아득하게 위아래로 치솟거나 내려가 있다. 현관에는 거울 하나가 있다. 그 거울은 겉모습을 충실하게 복제한다. 사람들은 이 거울을 통해 <도서관>은 무한하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곤한다. (만일 실제로 그렇지 않다면 이 환영같은 복제는 왜 존재한단 말인가?) 나는 그 반짝거리는 표면이 무한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확증시켜 준다고 상상하기를 좋아한다..... 빛은 등이라는 이물을 가진 몇 개의 둥근 과일들로부터 유래한다. 각 육각형마다 서로 교차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 두 개의 등이 있다.등들이 발하는 불빛은 충분치 않으나 꺼지지 않고 항상 켜 있다.
<보르헤스 전집, 2권, 알렙들> 중, 민음사
‘장미의 이름’의 배경이 되는 중세에는 아직 인쇄술이 발명되기 전이므로 책 한권을 얻기 위해서는
필사자의 손으로 한땀한땀 한글자씩 원본의 내용을 배껴 써야만 했다.
한권의 책이 담은 지식을 남기기 위해서는 저자가 감당했던 노동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져야만 했다.
이는 바로 지식의 무게 혹은 가치의 문제로 변환될 수 있다.
‘장미의 이름’의 마지막 장면,
도서관(장서관)이 불타는 모습을 바라보는
윌리엄 수도사의 절규는 그 무게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장미의 이름 장서관 묘사 부분 (관심이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길)
1.
우리는 다시 문서 사자실로 올라갔다. 역시 금단의 방으로 이어지는 동쪽 계단을 통해서였다. 이 미궁 같은 장서관에 대해서는 노수도사 알리나르도로부터 들은 말이 있는 참이어서 나는 무서운 일을 당할 것을 각오했다.
금단의 방으로 첫발을 들여놓고 보니 놀랍게도 창이 하나도 없는, 그리 크지 않은 7면 벽실(壁室)이었다. 방에서 곰팡이 냄새 같은, 쾨쾨한 냄새가 났다. 당할 것으로 각오하고 있었던, 무서운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방을 이루고 있는 7면 벽 중 네 벽에는 문이 있었다. 문 양 옆에는 조그만 기둥이 하나씩 서 있었다. 문은 꽤 넓었고, 기둥 위의 꾸밈새는 아치 모양이었다. 문이 없는 벽 앞에는, 서책을 가지런히 채운 커다란 궤짝이 놓여 있었다. 각 궤짝과 서가에는, 번호가 매겨진 두루마리가 각각 하나씩 들어 있었다. 서명 목록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숫자인 모양이었다. 방 한가운데에 있는 탁자에도 서책이 쌓여 있었다. 서책 위에는 먼지가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자주 청소하는 모양이었다. 바닥도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아치 모양으로 꾸며진 상인방 위에는 커다란 두루마리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 안에 Apocalypsis Iesu Christi(예수 그리스도의 계시)22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글씨는 고체(古體)였으나 두루마리 그림 자체는 오래된 것이 아닌 듯했다. 뒤에 다른 방에서도 이런 두루마리 그림을 보고 안 것이지만, 그림은 돌에다 꽤 깊이 새긴 것으로, 벽화를 그릴 때 화가들이 자주 쓰는 기법이 그렇듯이, 일단 음각(陰刻)하고 나서 그 홈에다 물감을 채운 것이었다. 문 하나를 지나자 또 하나의 방이었다. 이 방에서는 창이 하나 있었는데, 창에는 유리가 있을 자리에 설화 석고 석판이 끼워져 있었다. 방의 나머지 두 면은 그저 밋밋한 벽이었고, 또 하나의 벽에는 문이 있었는데 이 문은 우리가 조금 전에 지나온 것과 똑같이 톨로로 통했다. 물론 통로는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통로를 지나 우리가 이른 방 역시 밋밋한 벽 두 장, 창이 있는 벽 한 장, 그리고 문이 있는 벽 한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문 역시 다른 방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 두 방문의 상인방에도 처음 우리가 보았던 것과 똑같은 두루마리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두루마리 그림은 같지만 거기에 새겨진 글귀는 달라서 첫 번째 방의 출입구 상인방의 글귀는 super thronos viginti quatuar(높은 좌석 스물네 개), 두 번째 방의 출입구 상인방의 글귀는 nomen illi mors(그의 이름은 죽음)였다. 이 두 방은, 맨 처음 장서관으로 들어오면서 본 방보다 작았지만 내부의 모양은 똑같았다. 다른 것이 있다면 맨처음 장서관으로 들어오면서 본 방이 7면 벽실인 데 비하면 4면 벽실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세 번째 방으로 들어갔다. 이 방에는 서책도 없고 두루마리 그림도 없었다. 창 밑에는 조그만 석조 제단이 있었다. 문이 모두 세 개였다. 세 문 중 하나는 조금 전에 우리가 들어왔던 문, 또 하나는 우리가 지나 왔던 7면 벽실로 통하는 문, 나머지 하나는 새로운 방으로 통하는 문이었다. 이 방 역시 우리가 지나온 방과 다를 바 없었으나 두루마리에 세겨진 글귀가 달랐다. 이 방 두루마리의 글귀는, obscuratus est sol et aer(햇빛과 대기가 어두워지다)였다. 이 방 역시 또 다른 방으로 통했는데, 또 하나의 방 상인방 두루마리에 새겨진 글귀는, 대혼란과 화재를 경고하는, facts est grando et ignis(우박과 불덩어리가 떨어지다)였다. 이 방에는 문이 하나밖에 없어서 일단 들어갔다는, 들어간 문을 통하여 나오는 수밖에 없다.
윌리엄 수도사가 중얼거렸다.
"어디보자. 창이 각각 하나씩 달려 있고, 벽이 4면, 혹은 부등 4변형으로 되어 있는 방이 다섯 개 있었는데, 이 다섯 개의 방 한가운데에, 계단과 이어지되 창문이 하나도 없는 7면 벽실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이렇다. 우리는 시방 동쪽 탑루에 와 있다. 밖에서 보면 각각의 탑은 5면형이고 각 면에 창이 하나씩 있다. 아무것도 없던 방은, 동향이기가 쉽다. 그렇다면 교회의 성가대석과 같은 방향이 아니겠는가? 교회 제단은, 이른 아침의 햇빛이 비치게끔 정위되어 있을 테니까 말이다. 설화 석고석을 박은 창을 생각해 보아라. 이것은 버리가 여간 좋은 사람의 고안이 아니다. 설화 석고석이라고 하는 것은 낮 동안 햇빛을 통과시키기는 하지만 밤의 달빛은 한 줄기도 들여보내지 않는다. 말하지면 설화 석고석 창은 낮에는 창 구실을 하지만 밤이면 무용지물이 되는 게다. 자 7면 벽실의 나머지 문 두 개가 어디로 통하는지 한번 조사해 보자."
그러나 사부님의 말씀은 옳지 않았다. 장서관 설계자는 사부님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교활했다. 그때는 정황이 정확하게는 기억나지 않지만, 지금까지도 기억에 생생한 것은 일단 그 탑루의 방에서 나온 뒤에 보니 방의 순서가 어떻게 되었는지 조금도 생각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방 중에는 문이 두 개인 방도 있었고 세 개인 방도 있었다. 창은 모두 하나였다. 창이 있는 탑루 쪽 방에서 본관으로 들어간다고 들어갔을 때도 본관은 나오지 않고 창이 하나뿐인 작은 방이 나왔따. 방에 놓인 궤짝과 탁자도 모두 같은 것이었는 데다 그 위에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도 모두 똑같아 보였다. 따라서 궤짝이나 탁자나 책으로 이 방 저 방을 구분해 낼 수는 없었다. 우리는 두루마리의 글귀를 방향잡이로 삼아 각 방이 면한 방향을 알아내려고 해보았다. 우리는 두루마리의 글귀가 primogenitus mortuo-rum(죽은 자 가운데서 맨 먼저 살아난 자)으로 적혀 있는 게 분명할 터인데도 들어가 보니 뜻밖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였다. 게다가 두루마리의 글귀만 같았을 뿐, 우리가 맨 처음에 지난 7면 벽실도 아니었다. 우리는 그제야 두루마리의 글귀가 다른 방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두루마리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는 글귀가 새겨진 방 두 개가 연달아 있었다. 그러나 그중 한 방의 옆은 cecidit de coelo stella magna(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지다)라는 글귀가 새겨진 방이었다.
두루마리의 글귀의 출전은 알기 어렵지 않았다. [요한의 묵시록]에 나오는 글귀들이었지만, 그런 글귀를 상인방에다 새긴 까닭, 그 귈기가 의미하는 바는, 논리적으로 줄거리가 잡힐 만한 것이 아니었다. 또 하나 우리의 머리를 어지럽힌 것은, 많지는 않았지만, 그중 몇 개의 두루마리는 검은색이 아닌, 붉은색으로 채색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뿐만 아니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다보니 처음의 그 7면 벽실에 당도해 있는 것이었다. (이 방만은 계단이 있어서 알아보기가 쉬었다. 우리는 이 방의 오른쪽 문을 통해 나가 일직선으로 움직여가며 각 방을 다시 뒤져 보기로 했다. 우리가 방 세 개를 지나고 보니 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하나뿐인 입구를 통해 나가니 입구가 하나뿐인 새로운 방이 나왔다. 다시 통로로 빠져 네 개의 방을 지나니 다시 벽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우리는 이미 지났던 방으로 되돌아와 두 개의 출입구 중, 우리가 방금 지나지 않은 출입구를 통해 새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고 보니 뜻밖에도 처음에 우리가 만났던 7면 벽실이었다.
"우리가 되짚어 나온 마지막 방 두루마리에 뭐라고 쓰여 있더냐?"
윌리엄 수도사가 물었다.
나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흰 말 한마리가 내 기억에 떠올랐다.그래서 나는 equus albus(흰 말)라고 대답했다.
"좋다. 그 방을 다시 한 번 찾아보자."
그 방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리는 그 방에서는, 조금 전처럼 되짚어 나오는 대신 gratia vobis st pax(여러분에게 은총과 평화)라는 글귀가 새겨진 방을 지났다. 그런데 분명히 새로운 통로로 나왔거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우리는 다시 <그즈음>과 <죽은 자 가운데서 맨 먼저 살아난 자>하는 글귀가 새겨진 방 앞에 와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이 두 방은 우리가 지나왔던 방 같았으나 알 길이 없었다. 우리는 이 방에서 다시 처음 보는 방. tertia pars terae combusta est(땅의 3분의 1이 타다)에 이르렀다. 땅의 3분의 1이 탔다는 걸 알았을 때조차 동쪽 탑루 속에서의 우리 위치는 종내 짐작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2.
우리는, 일단 거기에서 나가는 데 성공하면 다음에는 관솔숯이나, 벽에다 표를 할 만한 것을 구해가지고 장서관으로 잠입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 미궁을 빠져 나가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처음 보는 문마다, 우리가 지난 곳마다 세 개의 기호로 나누어 표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 놓으면 한 번 지나간 곳은 쉬 알아볼 수 있어서 두 번 다시는 실수하지 않을 게다. 어떻게 표를 하는가 하면… 한 번도 지난 적이 없는 분기점을 만날 때마다 들어가는 통로에다 기호를 그린다. 만일에 그 분기점의 출입구 어느 한 쪽에, 이미 기호가 그려져 있으면, 한 번 와 본 분기점이기 때문에 입구가 되는 통로에 기호를 하나 더 그린다. 만약에 모든 분기점의 출구에 기호가 다 그려지게 되면 완전히 되돌아서서 기호가 그려진 분기점을 만나면 어느 출구로 나와야 하는가가 문제가 된다. 이때 우리가 선택한 출구에는 두 개의 기호를 그린다. 우리는 되도록이면 기호가 하나뿐인 통로만 택해야 한다. 만일에 어쩔 수 없이 기호가 두 개 그려진 통로를 지나야 할 경우에는 이 통로에 기호를 세 개 그려야 한다. 이렇게 해나가면 이 미궁의 분기점에는 기호가 없는 출입구가 하나도 없게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기호 없는 출입구가 하나도 없게 될 경우 세 개의 기호가 그려진 출입구를 통하면 장서관의 미궁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3.
사부님은 손가락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맞은편 벽, 사람의 키 높이쯤이었다. 거기에 두 개의 좁은 틈새가 있었다. 손을 거기에 갖다 대자 밖에서 불어 온 것인 듯한 찬바람의 냉기가 느껴졌다. 귀를 갖다 대어 보았다. 그제서야 밖에서 불어 들어오는 바람 소리임에 분명한 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었다.이것이 장서관의 환기 시설 노릇을 하는 것이다.
"당연하지. 여름에는 공기가 쉬 혼탁해질 터이니.. 습기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양피지가 마르지 않는다. 허나 이 건물을 설계한 자는 환기와 보습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구나. 보아라, 환기구를 교묘한 각도로 배치해 놓으면, 한쪽 구멍으로 들어온 바람이 방을 돌고 나가면서 조금 전에 우리가 들은 요상한 소리를 내게 되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 이 장서관에 침입한 자는, 거울에 당하고, 약초 연기가 불러일으키는 환상에 당하고, 이 소리에 정신이 혼비백산을 하고 말 게다. 우리만 해도 조금 전에는 귀신이 우리 얼굴에다 숨결을 내뿜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 바깥 바람이 세어, 바깥 바람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니 망정이지.. 이제 이 수수께끼도 풀린 게야. 그러나 이런 수수께끼만 풀면 뭣 하나? 나가는 길을 못 찾고 있는데..”
사부님은 이런 말을 하면서 미궁 안의 방방으로 나를 이끌었다. 두루마리의 글귀는 비슷비슷해서 읽어 봐야 별로 길잡이가 되지 못했다. 우리는 새로운 7면벽실에 이르러 옆방을 지났지만 거기에도 출구는 없었다. 우리는 들어간 길을 되짚어 근 반시간을 헤맸지만 여전히 우리의 위치를 파악하기는 불가능했다. 어떤 점에서 사부님은 우리가 실패했다고 결론지었다. 사부님까지 실패를 스스로 인정한다면 우리는, 아침에 말라키아가 우리를 발견하기까지 거기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면 우리 모험의 종말은 비할 바 없이 비참해지는 셈이었다. 천우신조, 내려가는 계단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은, 우리가 그렇게 우리 모험의 비참한 종말을 예견할 즈음이었다. 우리는 하늘에 감사하면서 의기 양양 그 계단을 밟으며 내려왔다.주방으로 내려온 우리는 벽난로를 통해 납골당 복도로 들어갔다. 맹세코 하는 말이지만, 육탈이 된 해골의 표정이 그날따라 그렇게 다정한 친구의 미소 같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다시 교회를 지나고 교회 북문을 통해 밖으로 나온 다음 묘석에 앉아 숨을 돌렸다. 시원한 밤 공기는 그것만으로도 하늘이 베푼 방향이었다. 별빛이, 장서관에서 보았던 환상의 공포를 말끔히 씻어 주었다.
'세상은 이렇게 아름다운데, 장서관은 어떻게 그렇듯이 추악할 수 있습니까?’
내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사부님이 대답했다.
"장서관을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으면 세상은 더 아름답게 보일 게다.”
우리는 본관을 한바퀴 돌았다. 그러나 말이 한바퀴지 사실은 멀찍이서 동쪽, 남쪽 ,서쪽 탑루와 이를 잇는 벽을 조사해 보았을 뿐이었다. 나머지 북쪽 벽은 낭떠러지에 면해 있어서 가까이서 볼 수 없었다. 우리는 대칭의 추론을 통하여 일단 북쪽 탑루가 다른 탑루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사부님의 지시에 따라 내가 석판에다 그리고 쓴 바에 따르면, 각 벽에는 창이 두 개씩 있었고, 각 탑구에는 모두 다섯 개씩의 창이 있었다.
"자, 생각해 보아라. 우리가 본 방에는 창이 하나씩 있었다.”
"면벽실만 제외하고 그랬습니다.”
"그건 각 탑루 중앙의 방이 아니겠느냐?”
"면벽실이 아닌데도 창이 없는 방이 있었습니다.”
"그건 잠시 접어 두고, 먼저 규칙을 찾고, 그러고 나서 예외적인 것을 설명해 보자. 이렇게 된다.. 밖에서 보면 각 탑루에 방이 다섯 개씩 있고, 벽에 면한 방이 두 개씩 있다. 각 방에는 창이 하나씩 있다. 그러나 창이 하나인 방에서 장서관 서실로 들어가면 창이 하나인 다른 방이 나오게 되어 있다. 즉, 안으로 난 창이 있다는 증거다. 자, 주방에서, 그리고 문서 사자실에서 본 계단실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더냐?”
"8각형이었습니다.”
"잘 보았다. 여덟 개의 벽면에는 각각 두 개씩의 창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여덟 개의 벽면 안쪽으로는 두 개씩의 방이 있다. 내 말이 맞느냐?”
"맞습니다만, 창이 없는 방은 어떻게 합니까?”
"그런 방은 모두 여덟 개다. 실제로 각 탑루의 안방은 벽면이 7면으로 되어 있고, 이 가운데 5면의 벽에 난 창이 탑루 속의 방 다섯 개와 통하고 있다. 창이 없는 벽 두 개는 어떻게 된 것일까? 이것은 외벽과 닿아 있는 벽이 아니다. 닿아 있다면 창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덟 개의 계단실에 면해 있지도 않다. 만일에 계단실에 면해 있다면 방이 장방형일 것이다. 자, 그려 보아라. 장서관을 위에서 보면 어떤 꼴로 보일지.. 자, 각 탑루에는 7면벽실과, 창 없이 연접하는 두 개의 방, 8각형 계단실과 창 없이 연접하는 방이 두 개씩 있다. 이 두 개씩의 방은 서로 통하고 있다.”
나는 사부님 말씀대로 그려 보고는 그만 탄복하고 말았다.
"알았습니다! 어디 세어 보겠습니다. 장서관 안에는 방이 모두 쉰여섯 개가 있습니다. 그중 네 개는 7면벽실, 쉰두 개는 4면벽실입니다. 창이 없는 방은 여덟 개.. 쉰두 개의 방 가운데 스물여덟 개는 외벽에 면해 있고 열여섯 개는 내벽에 면해 있습니다.”
"네 개의 탑루에는 각각 4면벽실이 다섯 개씩, 7면벽실이 하나씩 있다.. 장서관은 천상의 조화, 말하자면 갖가지 오묘한 의미와 상통하는 천상의 조화에 따라 설계된 것이로구나.”
"정말 놀라운 통찰이십니다. 그런데 이게 왜 그렇게 어려웠습니까?”
"수학적 법칙과 일치하지 않는게 있어서 그랬다. 문이 이 법칙대로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야. 여러 개의 방으로 통하는 방도 있고 하나의 문으로만 통하는 방도 있다. 게다가 어디로도 통하지 않고 막혀 버린 방도 있지 않더냐? 게다가 안은 어둡고, 태양으로 방향을 알아낼 단서도 없고, 환상이 나타나고 거울이 겁을 주어 혼을 빼놓는가 하면 들어간 사람은 죄의식이라는 짐까지 덤으로 지고 있어야 하는 판국이니 이 미궁 헤어 나오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느냐? 우리만 해도 어젯밤에는 출구를 찾지 못해서 얼마나 애를 먹었느냐? 배열의 극치가 연출하는 혼란의 극치.. 정말 놀라운 계산이다. 장서관의 설계자는 정말 놀라운 사람이구나!”
"앞으로는 방향을 어떻게 짐작하시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별로 어렵지 않다. 네가 그린 도면은 대충 장서관 설계도면과 일치할 것인즉, 일단 첫 번째 7면벽실에 이르면 바로 창이 없는 방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서 오른쪽으로만 돌아 두세 개의 방을 지나면 북쪽 탑루에 이르게 되어 있다. 여기에서 다시 창이 없는 방을 찾아 이 방을 끼고 왼쪽으로 돌아야 한다. 이 방은 7면벽실과 창 없이 연접해 있는 방인데, 여기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조금 전에 말한 대로 두세 개의 방을 지나면 서쪽 탑루가 나올 것이다.”
"방이, 다른 방과 서로 통하기만 하면 가능하겠습니다.”
"오냐. 그래서 네가 그린 약도면이 필요한 거다. 창이 없는 방을 점겸해야 나오는 갈을 알 수 있을 것이야, 허나 이것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게다.”
<장미의 이름> 중, 열린책들
하지만 지금은 인쇄술은 물론 모든 지식을 ctrl+C, ctrl+V로 복제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이다.
발터 벤야민은 그의 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사진을 통해 복재 가능해진 시대의 예술의 가치가
변화될 것을 예견했고 그 예견은 지금도 유효하다.
아니 더욱 강화되어 지식의 영역까지 확대되었다.
우리는 이제 시험볼때를 제외하고 무엇인가 모르고있는 상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필요한 지식은 어디엔가 있기 마련이고
적당한 질문을 잘 던지기만 하면 그 지식이 나의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아래의 동영상을 보면서 나는 불연듯 보르헤스의 ‘바벨의 도서관’
혹은 에코의 이름모를 수도원의 ‘장서관'이 떠올랐다.
이 시대의 새로운 '바벨의 도서관'의 모습이다.
위의 동영상은 구글의 수많은 데이터 센터 중 하나의 모습이다.
현재는 미국 아이오와의 카운실 블러프(Council Bluff), 벨기에의 생 기슬랭(St. Ghislain)을 비롯해
홍콩, 싱가폴, 핀란드(벨기에와 핀란드에 있는 데이터 센터는 바닷물을 이용한 친환경 냉각 시스템을 갖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