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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ject 5/6

아말피 코스트 기행 2. 포지타노

영원히 그리워 할 이름, 포지타노
다시 소렌토를 출발해 잠시 왔던 길을 되집어 레몬 트리로 뒤덮인 라타리 산맥(Lattari Mountains) 사이 길을 지나면 아말피 코스트에 진입하게 된다. 이탈리아 캄파니아주의 눈부신 햇살, 바다의 푸른빛과 그 표면의 반사광, 깍아지는 절벽에 살짝 얹힌 아슬아슬한 자동차 도로와 만나게 된다. 이 해안도로의 아름다움은 기암절벽을 구비구비 지나 자동차가 급격히 커브를 돌때마다 무심결 터져 나오는 우리들의 탄성(혹은 비명)으로 완성된다. 도로는 두 대, 때론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기에 긴장을 늦출 수 없지만 눈은 자꾸 아름다운 경치를 향하게 되는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1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포지타노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서너번 승용차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표현할 길 없어 그저 감탄만을 토해내게 만드는 경치들을 도저히 그냥 지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다와 절벽의 아슬아슬한 경계로 곡예하듯 이어진 도로를 달리길 여러번, 우리는 드디어 포지타노에 이르렀다. 

'분노의 포도’를 쓴 존 스타인벡은 포지타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했다.
“포지타노를 만나게된 순간 당신은 첫눈에 반하게 될 것입니다.
포지타노와 헤어지는 순간 당신은 그리워하게 될 것입니다."

포지타노의 모습을 직접 보기전에는 이 글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포지타노가 내눈에 들어온 순간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굽이굽이 흐르는 해안도로를 따라 포지타노는 한 순간, 내 시야 한가득 갑자기 다가왔다. 

<포지타노 전경>


처음엔 한 덩어리처럼 보였던 것이 기암절벽의 가파른 경사를 무릅쓰고, 마치 중국의 제비집마냥, 옹기종기 급한 각도를 따라 위치한 군락들로 변했고, 각기다른 색깔과 각기다른 모양의 개성을 드러냈다. 
해안도로로 연결된 두개의 일방통행로가 마을의 가운데를 관통하고 그 길을 따라 수많은 주택과 가옥들이 늘어서있고 건물과 건물 사이에는 가파른 계단으로 시작되는 샛길들이 거미줄처럼 미로(迷路)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이러한 형태의 지중해 연안 촌락은 카스바(casba)라고 불리운다. 

<미로같았던 포지타노 골목들>

<좁은 골목의 코너를 돌면 어떤 모습이 나타날까?>


이는 로마제국이 멸망하고 한때 4대 해상왕국의 한 축을 이루어 전성기를 구가하던 아말피 왕국이 쇠퇴한 후 치안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틈을 탄 이교도(이슬람) 해적들이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을 약탈하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항하기 위해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진 촌락의 구성형태이다. 악날한 해적들의 습격에 대비해 마을의 모든 길을 미로처럼 만들어 약탈 속도를 지연시켰는데 그 당시의 모양 그대로 지금까지 보존된 마을의 형태는 해적들에 대한 두려움은 없어지고 골목골목 새로운 풍경을 감춰둔 만화경같은 느낌이 되었다. 오른쪽 왼쪽 방향을 꺾을 때마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고, 어깨를 스치는 좁은 골목에서 마주한 포지타노 사람들은 낯선 이방인들에게 먼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낸다.‘Ciao~’. 미로같은 골목을 따라 점차 내려가다 보니 어느덧 해변이 넓게 펼쳐진 주인모를 어느 집 현관에 도달했다.

<어느집 앞에서 바라본 포지타노 작은 해변>


테레네해를 늘 바라볼 수 있는 기막힌 위치의 집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하고 기웃거리고 있는데 안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젊은 아빠와 6~7세로 보이는 꼬마신사가 대문으로 걸어나왔다. 좁은 대문 앞을 막고있는 상황이어서 미안하다고 던진 나의 말에 역시나 미소와 인사로 대답한다. 드넓은 하늘과, 드넓은 바다를 매일 마주하며 사는 사람들이어서 일까? 매일매일 바뀌는 그저 스쳐지나는 나그네 중 하나일 우리에게 지중해의 따스함을 잃지 않고 건내는 그들의 미소에 이방인의 마음이 무장해제되었다.

<해변에서 바라본 포지타노>

<한가로이 자연을 즐기던 아이들>

마침내 도착한 해안은 모래는 별로 없고 우리나라의 몽돌해안과 비슷한 자갈로 뒤덥혀있었다. 눈을 감고 햇살을 맞으며 알맞게 데워진 자갈 위에 누우니 축척된 에너지가 등을 타고 나에게로 전달되어 충전이 되는 것 같았다. 눈을 감았지만 소리로 자갈과 바다의 모습을 느낄 수 있었고, 위대한 창조주의 빛나는 작품 위에 길고긴 인간의 역사로 덧칠된 이 도시, 이 바다와 하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함께한 아이들도 나와 같은것을 느꼈는지 오래동안 조용히 파도소리와 선선한 바람을 묵상하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순간 갑자기 공기가 서늘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시간이 한참 지나 해가 질 무렵이 되었다. 이제 숙소인 프라이아노로 출발해야 할 시간이었다. 다시 우리를 바다로 안내했던 길을 따라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내려올땐 보지 못했던 벽에 장식된 문구에 눈길이 갔다. 소렌토-포지타노-라벨로로 이어진 이 지역의 특산물인 타일(tile)위에 장난스럽고 귀여운 그림들과 함께 쓰여진 문구였다. 

"LA DOLCE VITA". 한가지 상념이 내 머리를 휘감았다. 우리의 삶은 무엇인가?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모두 다른 인격과 경험과 배움을 통해 이끌림 받는 우리네 삶이라 하지만 결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의 영향에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저 동쪽의 끝자락 한반도의 언저리에서 태어나 아스팔트와 빌딩, 그리고 자동차 매연에 둘러싸여 수많은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과 이렇게 천혜의 바다와 햇빛 그리고 싱그러운 공기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삶은 결코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어떤 삶이 더 났다고 단정할 문제는 아니지만 그 삶의 결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지중해의 푸른 빛과 장렬하는 태양빛에 익혀진 삶은 이리도 달콤한 것일까? 귀여운 그림에서 표현된 이들의 삶에는 결코 우리네 삶에서 부러워할 점은 별로 발견할 수 없다. 그림의 주인공들은 나무에서 레몬을 따고 당나귀에게 먹일 물은 나르고 나무그늘에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한숨 잔 모양이다. 그들도 묵묵히 삶의 곤궁을 피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애를 쓰는 그런 별볼일 없는 삶이다. 하지만 왜 그들은 이렇게 담담하게 자신들의 삶을 "달콤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일까? 

여러가지 떠오르는 생각들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프라이아노로 출발하다가 문득 느끼게 되었다.

벌써 나는 포지타노를 그리워하고 있다는걸...

<포지타노의 마지막 뒷모습>